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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세정보

흐르는 거주지-길

  • 2017.10.27~2017.11.19
  • 인디프레스 서울

흐르는 거주지-길

  • 주최 인디프레스 서울
  • 참여작가 김보중
  • 문의 02-000-0000

전시명
흐르는 거주지-길
기간
2017.10.27(금) ~ 2017.11.19(일)
전시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장소
인디프레스 서울 / (03044)서울 종로구 효자로 31 경복궁 서쪽 영추문 건너편
주최/주관
인디프레스 서울
후원
-
요금정보
-
흙으로 세운 김보중의 벽
거주지를 그린 김보중의 이전 그림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경기도미술관 전시장에 놓인 작가의 그림들이 얼마나 눈부신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의 세부를 보게 하는 작업 안에서 꽃잎, 모래, 갯벌과 같이 흙에서 나고 다시 흙으로 떨어진 여러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을 견디고 있거나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는 듯한 팍팍한 생채기가 보이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감정과 서사가 개입할 틈이 없이 그림을 세세히 들여다보기를 자극하는 이번 신작들은 스스로가 사물로서의 인격성을 획득하는 존재감을 가진다. 파스텔 톤의 색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어떤 화면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가 하면 각자의 계절을 화면 안에서 구축한다. 김보중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서 걸으면서 땅을 본다. 작가는 위에서 아래로, 발에 채이면 채이는 대로 또 바닥이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눈에 보였던 장면들을 채집하여 그려낸다. 무엇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일까. 화가는 우주나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이 서 있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대상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그가 걸어다니는 '땅'이 되었다. 대상에 관한 가설을 세우고 조사, 예측하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라면 김보중의 신작들은 땅의 현재 모습에 관한 한 품 넓은 과학자 또는 지질학자의 태도와 유사하다. 한 예로 미서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사이에 있는 자연국립공원을 찾은 작가는 지금은 화석 지대로 남아있는 그곳의 땅에서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산림으로 변화할 수 있는 드문 드문 난 초목을 발견해낸다.(이미지 1「그냥노는땅」, 2016) "그동안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단련된 눈으로 이 붉은 흙을 보자니 눈이 시렸다. 얼마만의 흙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인가"(김보중, 『김보중 개인전-거주지』, 2012, 10쪽) 라는 몇 해 전 그가 쓴 문장들은 이제 그의 그림 앞에 선 관람자에게 적용된다.

김보중의 그림에는 땅과 식물들, 그리고 시간이 남긴 잔여물에 이르는 그가 걸었던 '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화가가 보고 그릴 수 있는 한, 가장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그려나가는 세부적 표현에 의해 힘이 생긴다. 그러나 식물학 도감에 실린 묘사와 그의 그림이 애초에 다른 것은 작가가 화면 전체에 퍼트리는 색면 그 자체의 존재감에 있다. 일렁이는 색채들은 화면을 압도해 나가지만 물리적으로 무겁지 않고 가뿐하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가의 신체적 제스처가 화면에서 아직 생동감있게 그 흔적을 드러내며 '그리기의 즐거움과 충동'이 추상적인 패턴으로 형상화되어있다. 꽃잎, 주름, 갯벌, 나뭇가지들, 이제 팍 피어나는 연두색 풀들, 하얀 자국 등은 화면 위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리듬을 만든다. 작가는 완결된 환영으로 화면을 결박하지 않고, 마치 여전히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땅 위의 식물이 방향을 틀 듯 땅을 역동적인 장으로 그린다. 일견 눈부시게 느껴지는 회색, 연두색, 보라색의 감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물론 그가 보는 사계절 땅의 풍경에 기인하지만 거주공간, 아파트, 숲의 공간을 그려왔던 그의 지난 작업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재하는 도시와 자연 풍경을 여러 면모로 그려온 그에게 건물의 벽과 유리창은 그림의 화면에 딱 달라붙는 수평수직적인 사각 프레임이었다. 작가에 따르면 살구색과 아이보리 등으로 그려나갔던 아파트 외벽과 창은 '분홍색'이 존재하지 않으면 완결되기 힘든 색채 감각이었다고 한다. 콘크리트와 유리창이라는 아파트-건물로서의 인공물을 그려내던 분홍색은 이번 전시에서 어떤 물질감을 땅의 감각을 획득한다.

길따라 존재하는 생명들을 담아내는 김보중의 그림들은 비약적으로 회화적 상태를 획득한다. 그리는 대상과 무관하게 획득할 수 있는 붓질로서의 물질성, 김보중이 그리는 시간 앞뒤로 걷고 또 걸었던 길들을 김보중은 「그냥노는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그 길은 복기되어 새롭게 자라나는 회화적 땅이 된다. '그냥'은 그림의 자세를 낮춰 부르는 태도인 것 같다. 무엇이 김보중의 그리기를 회화적으로 부르게 하는가는 여러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땅을 그린 그의 그림들이 전시장 벽에 위치하는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물감이 캔버스에 닿아 생성되는 붓 자국이나 묘사처럼 캔버스에 내재된 것들이 자리한다면 작품을 틀지우는 캔버스의 크기와 전시장에 놓이는 방식, 그리고 그림과 그림들끼리 획득한 관계들은 캔버스 '외부'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만들며 순환한다. 그림 안에 산재한 요소들을 통해 그림을 보는 것뿐 아니라 김보중의 그림은 그림 외부로 나와 옆의 그림들, 발 아래 있는 땅과 바닥을 바라볼 때 더 큰 의미망 속에 새로운 발견들을 가능케 한다. 그가 그린 하나의 그림 한 점을 바라본 후 또 그 옆에 맞은 편에 위치한 다른 그림들을 바라보자. 그것은 똑같은 땅의 다른 변환이자, 이어지는 땅 사이의 쉼표이다. 끝없이 지속되는 땅이 가진 불변의 시간성을, 지금 이 순간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적용함으로써 각각의 다른 시공간 위의 땅은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각각의 장면이 된다. 작가는 그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용인 고기리에 간헐적으로 남아있는 텃밭을 보며 "방치된 콩밭은 화가의 가슴 속에서 발효"된다고 썼다. 발표와 숙성이라는 표현은 그가 오랫동안 이 세계에 있었던 땅을 지금 화면 위에 올리는 그리기의 과정을 말하는 데 매우 적절한 용어일 것 같다. 땅은 닳고 닳은 시간 동안 억센 시간을 보내왔지만 작가의 관찰과 손으로 인해 오늘의 생기를 내뿜는다. 개별 작품들은 다른 존재감을 가진 그림들끼리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김보중의 신작은 화가의 위치에 대한 감각이 그 어느때보다 자유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거주지 특유의 기억과 역사적으로 중첩된 한국의 공간 구성 방식들, 특히나 그의 녹색옥상과 건축 표면을 덮은 질감들이 김보중의 특징이었다면 이번 그림들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구체적인 연상 작용이 불가능한 보다 넓은 흙과 땅들이다. 지표면이 몸을 일으켜 일어서 있는 것처럼 90도 일으켜세운 땅의 평면성은 전시장에서 수직적인 것이 된다. 가까이 대상에 훅 들어가서 획득한 시야는 김보중의 회화적 색상과 촉감을 무한대로 자유로운 것으로 만든다.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생동감있고 바람이 살갖에 닿는 것처럼 유동적인 유희가 작가가 그린 이 빛깔 좋은 그림들에 울려 펴진다. 이 기분좋은 감각을 획득한 그의 화면은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분당 야경과 놀이터, 안창마을과 용인의 숲에 이르까지 김보중이 잡아냈던 리얼한 풍광들은 어떻게 이렇게 그리기의 대상(건물, 지명)을 재현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며 그림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일까. 김보중이 예전부터 회화를 설치하는 방식에 대해 숙고하는 작가였다는 것은 그의 과거 작업, 특히 「용인-숲 거주지」(2000)를 설치하는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용인-숲 거주지」에서 작가는 입체물 위에 유화를 배치하는 구조물을 만들었고 「자라는 사다리」(1997), 「용인-거주지뜨락」(1997) 등에서는 '변형 평면'을 사용했다. 그는 이렇듯 그림들이 어떻게 화가로부터 나아가 제 2, 제 3의 관람자를 만나야 하는지, 어느 공간에 어떻게 위치해야 하는지를 오래 고민한 작가였다. 또 공간(옥상)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그리기 위치의 변화 자체를 즐기는 작가였다.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선 땅 연작「그냥길」은 사각형의 그림들이 길게 난 땅을 수직 낙하하는 이미지의 구현으로 보여준다. 이 길들 사이에 난 풀과 땅과 돌맹이, 구비구비 형태를 만들어가며 지속되는 땅의 형체는 하나 하나씩 이어가 보며 완성된 땅 그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땅이 뚝 끊어진 개별적 화면으로, 그러나 굉장히 긴 수직적 그림으로 연동되는 것은 최소한의 미래를 희망하려는 작가의 시간 감각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내려다 본 것임에도 기계(항공 무인 카메라)가 본 것과는 달리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 요즘의 디지털 풍경이 따라잡으려 가는 로드 뷰처럼 전체를 조감하는 속도감 있는 시각이 전해지는 풍경이라는 점이다. 또 아주 높은 공간에서만 이 긴 그림의 전체 모습을 배치해볼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 현시원

김보중_가을뜨락_종이에 수채_130.3×193.9cm_2014

김보중_가을뜨락_종이에 수채_227.3×181.8cm_2015

김보중_건업리 붉은길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6

김보중_길위의 에로스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7

김보중_숲의 순례자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1998

김보중_숲의 순례자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1998

김보중_오래된 강_캔버스에 유채_240호_2016

김보중_오래된강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5

김보중_용인-거주지뜨락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1997

김보중_용인-거주지뜨락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1997

데이터기준일자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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