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내용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경기문화포털

메뉴전체보기

전체메뉴

메뉴보기 검색

경기문화포털

메뉴펼쳐보기

메뉴전체보기

컨텐츠페이지

전시 상세정보

회색의 지혜(The Gray of Jihye)

회색의 지혜(The Gray of Jihye)

  • 주최/주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참여작가 강석호, 김수영, 노충현, 써니킴, 이제
  • 문의 031-992-4400
  • 홈페이지 whiteblock.modoo.at/

전시시간
오전 11시 ~ 오후 6시
장소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10859)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요금정보
3,000원 (카페이용시 무료)
■ 전시 내용



1. 회색의 지혜

전시 <회색의 지혜>를 통해 소개하는 다섯 작가의 작품들은 그들이 가진 회화적 전망을 언제나 초과한다. 한편에선 시선과 응시의 변증법을 넘어,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틈을 개방하며, 다른 한편에선 개인의 기억과 정서, 우정과 연대의 사유가 어느새 감응과 정념의 몸짓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창작 주체에 귀속된 역량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의 도래(a? venir)는 자신이 마주하는 세계 앞에서 대상과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조정해야만 하는 창작 주체의 불안정한 숙명을 이끈다. 전시 <회색의 지혜>는 그렇게 작가의 역능과 회화적 사건의 어긋남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세계를 사유하고 실천하며 비로소 그러한 세계에 포함되려고 하는 동시대 한국미술의 회화적 실천들을 살핀다. 이 전시는 무엇보다 지금 우리의 삶의 조건을 되물으며 회화의 진리를 체현하고 있는 작품들의 미학적 가치에 주목하지만, 개별 작가들의 미학적 성취에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오히려 여기 놓인 작품들을 지렛대 삼아 회화라는 미술의 심급을 동시대적 사유의 지평 위로 끌어올리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참조하는 대상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현된 미적 실천이 지금 우리에게 있어 무엇을 여전히 가능케 하는가라는 질문에 단지 맞닿게 할 뿐이다.

그 시작점으로써 전시는 서로 다른 회화적 실천들을 임의의 공통된 미적 결과로 가정하며 작품들을 소환한다. 상호 교차하는 시선들의 혼란, 불규칙한 의미의 연결고리들, 목적 없는 감각의 연대를 오롯이 회색의 미감에 기대어 바라본다. 여기서 ‘회색의 미감’이란 단지 관념화한 도시적 색감, 혹은 근대적 풍경의 메타포가 아닌, 세계를 마주하는 작가들의 미적 태도에서 연유하는 공통된 회화적 기표들로 간주된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 펼쳐진 무수한 중간 명도들, 대상과의 거리에 있어 너무 멀거나 가깝지도 않은 모호한 위치, 크거나 작지 않은 애매한 크기들, 아직은 이르거나 이미 늦어버린 시간 사이에 놓인 모든 중간적인 상태를 포용한다. 그것은 양극단을 평균하는 물리적 좌푯값이 아닌, 범위와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비언어적인 것들의 급작스러운 출현, 불명료한 경계들의 영토로서 삶의 실재(the real)를 응시하는 회화적 실천들의 미적 셈법을 따져보는 일이 될 것이다. 언어적 사유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중간적 계열에 대한 미적 실천에 주목하는 이러한 과정은 풍부한 회색의 스펙트럼을 세계에 대한 환대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출품작 대부분은 개별 작품이 갖는 내용보다는 공통된 시선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영역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성질을 갖는지를 고려하며 선택되었다. 따라서 선별된 작품들은 다른 그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 본연의 의미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혹은 그러한 미적 실천을 작동시키는 장치들과 함께 하나의 전시를 구성한다. 여기서 작품들은 의미생산에 열린 디스플레이의 특정 형식 속에 상호 교차하고 작가들의 미적 영역에 따른 구분 없이 전체가 연쇄적으로 제시된다. 세 개의 서로 다른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고유한 예술적 사유와 실천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넘어, 어쩌면 그것들이 점차 소멸해가는 미적 사건의 경로와 방식에 우리가 직접 개입하는 전시의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전시의 내용과 형식을 단순히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전시공학의 문제에서 벗어나 그들의 작업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작가들, 작품들의 예술적 실천 방법과 생산 전체를 전시의 대상이자 목적으로 삼는다. 전시의 형식이 특정한 지식과 감각의 분할과 재배치에 대한 특정한 질문과 사유의 형태라면, 이 전시는 결국 상이한 예술적 좌표들의 힘의 관계가 와해하는 삶의 실재계에 한해서, 지금 여기의 회화가 우리의 동시대적 삶을 의문시하며 무한한 대화의 장으로 제시되는 것과 그 뜻을 함께할 것이다. 이 전시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얻은 회화에 대한 또 다른 지식이 아니라,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삶의 지혜에 온전히 기대어있다.


2. 지혜의 회색

회색의 지혜는 하나의 전시이지만, 사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시가 하나로 겹쳐진 형태이다. 그 하나는 세계를 대면하는 지혜의 이미지들, 바로 그런 이미지 사이를 연결 짓는 회색의 궤적을 쫓는다. 여기선 작가 고유의 회화적 단락이 강조되기보다는 오히려 회화들끼리 서로 관계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의 결여를 보충하는 상태로 전개된다. 다른 하나는 세계에 위치하는 회화들, 마치 ‘지혜’라는 익명의 주체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회화적 사건을 다룬다. ‘회색’의 궁극적인 운명이 전시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두 개의 전시, 두 개의 나란한 선분, 첫 번째가 세계에 대한 중간의 감각에 있어서 상이한 입장과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두 번째는 현실이나 세계에의 참여, 몰입한 시선의 반대편에서 ‘지혜’와 ‘회색’의 진정한 의미에 기대어 미술과 현실의 근본적인 관계와 가치를 질문한다. 여기서 지혜는 세계를 잘 이해하는 삶의 덕목과 함께, 세계에 더 잘 들어가는 삶의 태도로 제시된다.

대상을 참조하고 형상에 질감과 경계를 부여하며, 이미지에서 회화적 사건으로 전개되어 나아가는 이미지-질료는 결코 이미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무수한 회화적 지표들이 있는 한, 회화는 이미지를 잠식할 수 있다. 지금 어딘가에 이미지와 싸우는 회화가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미지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회화는 이제 또 다른 대상과 손목을 건 내기를 펼친다. ‘지혜의 회색’은 여기서 회화의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작품과 좀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화의 진리에 더 가까워지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회화가 어떻게 시간을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여기 모든 그림을 마주할 때, 우리 자신은 더 이상 두 개의 동공을 가진 한 명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림에 둘러싸인 하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갈 때, 다시 말해, 시간에 우리의 몸을 내어줄 때, 이제서야 회화는 주위를 둘러싸며 우리의 몸을 감싼다. 이것은 물리적인 시간의 더와 덜에 관계된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림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살피는 문제가 된다.

그렇게 회화를 몸과 시간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회화가 단지 몸에 대한 충실한 기록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회화를 향해 우리의 몸을 내맡기는 과정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한때 사람들은 회화의 동시대성이 신체성에 기대어있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신체의 감각을 기록하고 기록을 다시 신체화하는 일, 결국 몸을 통해 회화를 읽어내는 일이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회화는 지금 여기, 우리의 몸에 세계의 흔적을 새기고, 회화를 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화적인 것에 둘러싸이게 한다. 회화의 시간은 그래서 몸이 둘러싸이는 시간이다. 보이게 하는 것에서, 결국 들리게 한다. 음악의 도약이 들리는 것에서 우리의 몸을 감싸듯, 회화는 이제 자신의 근원적인 시각적 가치와 결별하며 음악적인 것을 통해 자신의 당대성을 획득한다. 그러한 회화는 오래전부터 현재가 명명할 수 없는 것을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일을 수행하며, 스스로 세계의 전체가 되어가는 회화를 진리에 허한다. 개별 작품은 모두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모두 들리는 것이다. 시선의 권력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순간들, 회화의 불가능성이라는 영토에 선명한 도주선을 그리는 일이다. 시선에 모든 권한을 부여하며 세계를 위계로 분할하는 것들로부터 감각에 대한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 시선의 벡터값을 모든 다른 방향들로 분산시키는 힘, 그것이 익명의 지혜가 가진 진정한 이름값이다.

신체를 둘러싼 세계에 노출된 모든 감각은 이제 경중 없이 동시에 움직인다. 그것은 나의 신체가 타자성의 세계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의 분명한 자각이다. 회화는 이제 시선이라는 권력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구성해낸다, 주체가 중심이 되어 바라보는 세계로부터, 보이는 세계로, 들리는 세계로, 둘러싸이는 세계를 향한, 궁극의 수동성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 시대에 도래할 회화의 정치적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주체의 바라봄에 의해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가 버린 세계를 향해서 다시 음악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방식, 회화의 타자들은 현재라는 시간의 진정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전회의 순간을 맞이한 지금 여기의 회화는 더는 시각으로 점철된 시간성이 아니라, 음악적인 것으로, 우리의 몸을 에워싸는 시간으로 펼쳐진다. 아마도 지혜는 회색을 그렇게 음악처럼 연주했을 것이다. (김연용, 전시기획)



목록 스크랩


맨위로